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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왕실의 백년손님 - 10점
신채용 지음/역사비평사


부마의 어원은 중국 한나라 시대 임금이 타는 수레의 말을 관리하는 벼슬에서 유래한다. 부마라는 단어에 함축된 의미답게, 조선시대 부마의 삶을 살펴보면 비록 정치의 전면에 나서지는 못했지만 정책과 정사를 보이지 않게 보좌하면서 국왕을 현군으로 이끌기도 했고, 국왕의 패악과 패륜을 부추기면서 잘못된 길로 인도하여 역사의 죄인으로 만들기도 했다.


조선 후기 문예부흥기를 이끈 정조의 치세 중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은 실학의 발전이다. 정조가 규장각 출신의 관원을 직접 선발하고 교육하면서 북학 진흥에 힘쓴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북학은 청나라 사행을 통해 들여왔는데, 이 막중한 임무를 정조는 그의 고모부들에게 맡겼다. 정조의 고모부란 곧 영조의 부마를 말하며, 이 시기 북학 수입의 중대 임무를 맡았던 이는 박명원과 황인점이다. 특히 황인점은 정조 재위 기간에 가장 많은 사행을 떠났는데, 거의 2~3년에 한 번꼴로 청나라를 다녀왔다. 정조는 사행의 임무를 맡길 만한 인물로 종친이 아닌 의빈을 선택했다. 정조의 고모부이자 영조의 부마인 박명원과 황인점은 정조의 믿음과 신뢰에 힘입어 청나라의 선진 문물을 들여오는 데 앞장섰고, 이렇게 들여온 문물은 조선 후기의 실학 발전에 밑거름이 되었다.


조선시대 최악의 폭군, 혼군으로 뽑히는 왕은 연산군이다. 조선 제10대 왕이지만 재위 기간 동안 폭정과 패륜을 일삼고, 두 차례의 사화를 일으켜 많은 신료를 죽이고 왕위에서 쫓겨났기에 ‘군(君)’으로 강등되었다. 연산군 시대에 주목할 부마는 임숭재이다. 임숭재는 성종의 부마로서 연산군에게는 매부가 된다. 임숭재의 아비 임사홍은 맏아들 임광재도 예종의 부마로 만들고 갑자사화를 일으킨 인물로 조선시대 대표적인 간신으로 손꼽힌다. 성종 부마 임숭재는 연산군의 매부로서 채홍사가 되어 전국의 미녀들을 뽑아 바치는 일을 맡았다. 그런 그의 위세는 왕의 행차에 버금갈 정도였다.


한편 벼슬할 수 없는 처지이기에 아예 정치와 담을 쌓고 문필가나명필로 이름을 날린 부마도 있다. 사림이 등용되기 시작하던 무렵, 중종 부마 송인은 조선왕조의 부마 가운데 최초로 문집을 남겼다. 조선의 문장사대가로 꼽히는 장유와 이식은 송인의 문집인 『이암유고(頤菴遺稿)』에 발문과 후서를 썼는데, 특히 이식은 송인에 대해 “예나 지금이나 임금의 사위가 된 자들은 호화스러운 생활을 하면서 그 지위를 믿고 거만을 떨지만, 송인은 초야에 사는 유자(儒子)의 행실과 덕을 갖추고 있었다.”라고 평했다.


현종 부마 오태주는 조선의 명필로 중국에까지 명성을 떨쳤으며, 그의 매부가 되는 숙종과 시를 주고받으며 마음을 나누었다. 오태주는 그의 아비 오두인이 인현왕후의 폐출에 반대하다가 숙종의 노여움을 사서 국문을 받고 유배를 가던 중 죽었는데, 이 때문에 현실 정치에 관심을 끊어버리게 되었다. 그렇지만 현종의 유일한 사위이자 숙종의 하나밖에 없는 매부이기에 오태주는 손위 처남인 왕의 마음을 헤아리고 화답하는 시로써 위로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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